
송하영 개인전 《Re: Sense》
구축된 추상, 활동적인 삶과 그림
글 모희(페리지 큐레이터)
감각은 지각(perception)에 선행하는 조건으로서 언제나 일시에, 한 번에 발생한다. 감각이 형성되는 우리의 표피가 매 순간 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세계와 나를 경계 짓는 유약한 표피는 바깥의 여러 자극 – 시각 정보, 냄새, 소리 등 - 을 여과하지 않은 채 동시에 거두어들인다. 반면 지각은, 특정한 감각 정보를 ‘선택’하고 재해석하는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다. 즉 우리는 지각을 통해 현실의 일부를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명멸하는 빛처럼 이내 흩어지고 마는 감각은 지각에 이르러 얼마간 잔존한다. ‘perception’의 라틴어 어원인 ‘페르키페레(percipere)’가 ‘붙잡다’, ‘포획하다’와 같은 뜻을 지닌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지각은 보다 능동적으로 감각을 취하는 과정에 가깝다. 물론 감각과 지각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엄밀히 규명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 사이를 잇는 연결 고리는 아직 어떠한 과학적 지식이나 철학적 명제로도 명확히 설명된 바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불가해한 영역의 신비 속에서, 감각과 지각은 창발적 사고와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송하영은 마주하는 풍경 속 산재하는 감각을 그림으로 가시화한다. 그가 발견하는 정경의 조형적인 리듬은 선명한 감각의 지형을 이룬다. 여기서 감각은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 요소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을 포괄한다. 이를테면 눅눅하거나 건조한 그날의 공기, 나의 시야를 따라오다가도 이내 앞서가는 장면의 속도, 발밑과 귓속을 울리는 소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유형의 성질을 획득하도록 돕는 내면의 의식과 감정. 풍경은 여하한 감각과 정서적 경험을 통과하며 이런저런 모양으로 변해간다. 따라서 송하영에게 풍경은 외부에 고정된 하나의 대상이 아닌, 다양한 갈래로 뻗어 나가는 유동적인 흐름이다. 그가 그림에 담고자 하는 상(image) 또한 경계를 오가는 모종의 ‘움직임’인데, 이는 캔버스의 안팎을 아우르며 지속된다.


송하영이 종래에 도달하고자 했던 활동적인 그림에 관해 서술하기 전에, 그의 회화가 전개되어 온 방식을 하나씩 톺아보자.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찰나의 감각은 어떤 형태로 캔버스의 표면에 안착할까? 송하영은 감각이 일으키는 세계와의 마찰을 점·선·면과 같은 작은 단위의 도형으로 치환한다. 서로 다른 채도와 명도, 크기를 가진 감각-도형들은 그들이 누비는 평면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새겨진다. 감각-도형으로 구성된 송하영의 회화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재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상화’라 부를 수도 있지만, 완전한 무정형(formlessness)의 추상을 표방하지는 않는다. 각각에 고유한 질감과 빛깔은 한눈에 보아도 뚜렷한 윤곽을 지녔다. 이들은 모두 정형적인 도형의 모습으로 캔버스에, 다시 캔버스들의 조합과 배열로 이루어진 전시장에 현현한다. 그러므로 송하영의 그림은 일종의 ‘구축된 추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구축의 과정이 꽤나 많은 우연을 경유한다는 것이다. 치밀한 계산과 설계를 바탕으로 촘촘히 짜여진 듯한 그의 그림은, 밑그림조차 없는 흰 바탕에서 시작된다. 그림의 개별 요소들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색면을 기점으로 더해지거나 덜어진다. 다만 우연히 그곳에 있게 된 도형은 물감을 조색한 뒤 일정한 밀도로 층위를 쌓아가는 반복적인 작업을 거쳐 형성된다.


매끄럽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송하영의 그림은 언뜻 단단히 고착된 표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애써 그어둔 경계를 횡단함으로써 정지된 평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먼저 그림의 내적 측면에서는, 주로 마지막 단계에 가미되는 빗금과 원을 활용하여 그렇게 한다. 적층된 색면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빗금, 선 위를 활주하거나 미끄러지는 원은 경계를 넘나들며 생동하는 장면을 일군다. 이어서 그림 속에 생성된 활기는 그림의 바깥, 달리 말해 실재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감각-도형들이 평면에 구조화되어 있는 형식과 동일하게, 캔버스는 구조물을 이루는 모듈로 활용된다. 공간의 부피를 차지하고, 모서리의 경계를 가로지르기도 하는 캔버스(들)의 조합(assemblage)은 벽에 붙박인 납작한 평면에서 해방되어 부푼 몸집을 얻는다. 이때 캔버스는 그림-이미지를 제시하기 위한 지지체에서 벗어나 또 다른 풍경의 일부가 된다. 악기의 음을 고르듯 화면과 공간을 조율해 나가는 송하영은, 그리기, 만들기의 행위를 빌려 채집된 감각을 재감각(re:sense)한다.

다이브서울에서 열리는 《Re: Sense》는 그간 송하영이 모아 온 몇몇 도시 풍경과 무수한 감각들의 ‘구축된 추상’을 선보인다.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감각은 잠깐 반짝였다가 이내 사라지는 빛(<Flint & Form>(2024)),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불꽃(<Flare & Highlight>(2024)), 급격한 폭발로 빛을 내뿜고 소멸하는 초신성(<Supernova & Highlight>(2024))의 속성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송하영이 내내 거듭한 과정은 그 짧은 시간을 지연시킴으로써 부단히 지각하는 일이었다. 이는 곧 관조하는 시선(vita contemplativa)에 머무르지 않고 작업(work)을 통해 활동적인 삶(vita activa)[1], 활동적인 그림으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송하영이 마련한 이 공동의 지각장 안에서, 반짝이는 감각들은 이제 막 저마다의 의미에 다다랐다.

[1]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두 가지 틀로 ‘관조적 삶’과 ‘활동적 삶’의 개념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진리의 탐구와 사색에 중점을 둔 관조적 삶과 달리 활동적 삶은 인간이 세상과 관계 맺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삶의 방식이다. 활동적 삶의 한 양상으로서 작업(work)은 창작과 같이 영속적인 인간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행해진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한길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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