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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서사 - 안소연(미술비평가)

 

 

2022 고양문화다리 지역예술가 선정

송하영 개인전 [움직임: 모든 건 연결돼 있고 순환한다]

어울림미술관 2022.10.18-10.23

 

 

안소연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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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펼쳐 놓은 대형 < Movement>(2022) 연작은 기하학적인 선과 면의 조형적 구성을 통하여 어떤 움직임을 제시한다. 가로로 놓인 캔버스의 나란한 생김새가 연속하는 수평의 방향성을 한껏 강조하면서, 그것과 평행하는 화면 속 직선의 반복을 시각적으로 좇게 한다. 이때 수평의 직선들과 교차하는 수직의 선과 면들은 상대적으로 회화의 공간/평면을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으로 구분해 주며, 그 화면에 등장한 크고 작은 원들에 개별적인 위상(position)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부에서 바깥으로 서서히 움직이다 (방금) 멈춰선 일련의 운동성을 암시하면서 말이다.

   송하영의 회화는 기하학적인 선과 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는 채도와 명도를 이용한 구성적 접합과 분할을 통해 회화적 공간을 조정하며 확보해 나간다. 때때로 어떤 것은 환영적인 시지각적 경험과 인식을 퇴화시키지 않고 다시 회복하려는 국면을 보여주다가도, 이내 (비재현의) 추상적인 표면에서 마치 매끈하고 도톰한 시트지를 오려서 붙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표면의 실제적인 두께를 따지는데 연연하게 한다. 이러한 양 극단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송하영의 회화를 규명하는 요소들은 회화적 환영에 의한 기하학적 요소들의 논리적 관계성과 더불어 표면에 쌓아 올려진 색면(들)의 층위를 시간적 관계 속에서 해체하여 (역)추적해 나가는 물리적 관계성을 공유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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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ment #1>은 검은색에서 옅은 회색으로 점진적인 명도 변화를 드러내면서 일종의 배경처럼 보이는 “회화적 공간”을 이루어냈다. 캔버스의 가로선을 모방하듯 중첩해 있는 그림 속 가로 그리드의 경계는 세로 모서리 일부와 맞닿아 연결된 채 (결과적으로는) <Movement #1>의 공간을 끝이 열려 있는 오른쪽 통로로 이동하는 지표처럼 설계해 놓았다. 말하자면, ⌙모양으로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의 이 경계는 <Movement #1>에서 상부의 허공을 떠받치는 지표이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일종의 길로 제시될 수 있다. 이때, 열려 있는 그리드 바깥을 향해 그 경계의 가장자리에 멈춰 서 있는 노란색 작은 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허공에는 시야에 훨씬 인접해 있는 짙은 회색 창/베일이 회화의 표면을 뚫고 나오지도, 그렇다고 그 너머로 깊숙이 진입해 들어가지도 않은 채 회화 표면의 경계를 부분적으로 특정하며 자리하고 있다. 그 사각형의 표면과 그 너머로 명도 차를 나타내며 흐린 회색의 가상적인 배경을 추상적으로 함축하는 색면은, 그 사이 공간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노란색 반원에 대한 형태적 기원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Movement #1>의 기하학적 서사는 <Movement #2>와 <Movement #3>로 이어져, 더욱 복합적인 시공간의 서사적 관계를 그려낸다. 송하영은 작업의 과정에서 이러한 기하학적 서사의 점진성을 구축하게 되는 조건으로 이 회화적 공간을 설계하는 자신의 개입을 즉흥적인 지각과 인식의 변수로 설정하여 일련의 게임을 작동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그는 화면 전체의 구성을 종합적으로 계획한 밑그림도 없으며, 색을 조색하거나 배열하는 특정 패턴과 원리도 구축해 놓지 않는다. 오히려 즉흥적인 변수를 매개하는 실행자로서, 그는 기하학적 서사의 연쇄를 (일정 조건 속에서) 중단 없이 이끌어가는 임무를 신중히 수행한다. 쉽게 말해, 그는 꽤나 즉흥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캔버스의 크기에 따라 회화의 스케일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 그는 이 평면의 조건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판단과 선택을 매번 결정한다. 그러한 최소한의 결정에 따라 송하영은 회화의 표면을 구성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비평적으로 추적함으로써, 기하학적 서사의 조건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그의 작업은 각각 설계된 회화적 공간 속에서 선과 면, 채도와 명도, 크기와 거리 등을 조율하며 내부의 관계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연작에서는 그림과 그림 사이의 시간적 혹은 공간적 관계성을 더욱 복합적으로 가늠해 볼 구실을 찾게 한다. 이를테면, <Movement #1>에서 <Movement #2>로 시점이 이동하면서, (회색 바탕과 노란색 형상으로 구분되었던) 색의 단순한 관계가 크게 증폭되어 (회색과 노란색 바탕과 붉은색 형상으로) 새롭게 조율되고 시공간 또한 액자식 구성처럼 선형적인 관계를 벗어난 채 기하학적 요소들 간 상호적인 반영을 활성화하는 면면을 강조해 보여준다. 개별적인 캔버스를 방사형으로 조립하여 가변적으로 설치한 또 다른 <Movement> 연작도 “움직임(Movement)”의 화두를 회화적 공간 안팎에서 다루어 봄으로써, 그는 회화의 조형 요소들 간 미학적 리듬을 말했던 오래된 규범에서 우회하여 추상적 서사성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와의 접합 및 분할을 적극적으로 매개하려 한다. 신작인 <Sequence>(2022) 연작은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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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기시키듯 <Sequence> 연작은 좀 더 포괄적인 서사의 함의를 암시한다. 서둘러 말해보자면, <Sequence>는 구조적으로도 비선형적이며 관계적으로도 위상이 모호하나 전체로 봤을 때(만) 포괄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리드 안의 개별적인 조형 요소들은 또 다른 비율의 연작들에서 반복되나 그것의 다른 면/장면을 조명하는 것처럼 보여, 결과적으로 평면적인 기하학적 구조가 다른 각도에서 조명되어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맥락에서 재조명되거나 새롭게 접합되고 분할되는 국면을 나타낸다. <Sequence #1, 2, 3>은 닮음과 차이를 공유하면서, 마치 가상의 공간을 시뮬레이션 했을 때 임의로 포착되는 장면들을 추출해낸 형태의 다수성을 보여준다.

   <Behind the surface>(2020) 연작은 이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과 회화적 시도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단순한 색면의 배열을 통해, 송하영은 회화의 표면에서 출발해 개별적인 색면들로 이어지는 “표면” 너머와의 공간적 관계를 탐구하고 실험했다. 그는 회화의 “순수한” 표면이라든가, 회화의 평면에 귀속되어 있는 “고정된” 표면에 대해 의심하며, 되레 유동적인 표면을 포착하기 위해 추상적 평면을 구축해 온 회화적 시도를 일종의 도구로 전환해 놓는다. <Behind the surface>는 큰 색면의 배열과 중첩을 통해 표면 너머의 회화적 공간으로의 진입을 매개하는 것 같지만, 이 보다 앞서 송하영은 각각의 색면을 회화의 표면으로 설정할 때마다 캔버스 내부의 회화적 공간은 어떻게 재배치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그러한 연속에서 <수축과 팽창>(2022) 연작은 <Behind the surface> 연작에 관한 독립연구로서 의미를 갖는다. 신작 <수축과 팽창>은 사실 개별적인 연작으로 제작된 것이지만, 일련의 작업 흐름을 고려해 볼 때 <Behind the surface>와 개념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수축과 팽창>은 송하영의 회화 공간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개별적인 요소들로 마련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단순한 요소에 대한 중층의 실험이 복합적인 구조의 작업들에서 임의의 조건을 매개하는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수축과 팽창>은 붓질을 가늠하기 어려운 매우 인공적인 표면을 압도적으로 과시하는데, 그러한 이유에서 회화적 공간의 환영은 가상 공간의 양가적 깊이감으로 전환된 것 같은 착시마저 일으킨다. 다시 말해, 여러 명도의 회색 배경이 제시하는 평면 회화의 공간감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가상적 환경처럼 느껴질 정도다. 송하영이 임의의 기하학적 형상으로 회화적 공간에 자주 등장시키는 원의 형태는 “수축과 팽창”의 재설정에 의한 변이를 불러오는데, 그는 이를 수십 번 쌓아 올린 물감층에 의해 가상 이미지의 회화적 번역을 망상하게 한다. 사실 송하영은 디지털 이미지나 그것에서 파생된 (괴물 같은) 변이를 작업에서 다루거나 참조한 바 없으며, 그의 회화적 관심사와 직접 맞닿는 개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축과 팽창> 연작은 여러모로 회화적 환영과 견줄만한 가상 공간의 좌표를 지각하고 인식하게 한다.

   <수축과 팽창>은 회화의 바탕과 형태의 관계를 환기시킴으로써, 일련의 이미지를 경험하고 지각하는 일련의 절차들 속에서 감각을 테스트 하기 보다 이미지의 역량을 테스트 해보려는 의도를 어필한다. 그래서인지 송하영은 화가의 붓질과 신체의 제스처를 전면적으로 숨기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임의의 표면 위에서 형태의 “수축과 팽창”을 감행해 보는 것일 테다. 이때 송하영은 강박적일 정도로 회화적 붓질을 제거하기 위해 매끄러운 표면 구축에 힘쓰는데, 그 결과 회화의 환영적 성취 대신 가상적 공간으로서의 “수축과 팽창”을 회화 표면에 잠재적 요인으로 결합해 놓은 셈이다.

   <Movement> 연작의 회화적 진화와 더불어 <온도의 차이>(2022) 연작도 비슷한 선상에서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온도의 차이>는 별도의 판넬을 짜서 만든 변형 캔버스로서 극단적인 직사각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의 부조와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두께를 가지고 있으며, 뒷면을 제외한 5개의 표면이 일관된 조형적 논리 안에서 관계를 드러낸다. 송하영은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있는 <온도의 차이> 연작 설치를 통해, 그의 회화적 공간과 형상 간의 관계를 전시공간에 부조적 회화의 형상을 배치함으로써 일련의 전환과 확장을 시도했다. 이때의 전시 공간은 회화적 공간으로 재해석 되어, 추상적이며 가상적인 경험을 실현시키는 기하학적 서사의 공간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모든 건 연결돼 있고 순환한다”는 전시의 부제처럼, 송하영은 “수축과 팽창”, “움직임”, “시퀀스”의 작동을 통해 기하학적 서사가 구축하는 회화적 공간에 대한 이해를 실험하고 있다.